혼합경제에서 정부가 수행하는 역할을 요약해 표현하면, 때로는 가계, 기업들과 동등한 입장에 서기도 하고 때로는 이들을 감독하는 입장에 서기도 하면서 국민경제를 함께 끌어내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경기자와 심판의 역할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경제적 기능을 의미하는 것일까? 머스크 레이브 는 국민경제가 안고 있는 세 가지 주요 과제에 대한 대응이라는 관점에서 정부가 수행하는 경제적 기능의 개념을 정립한 바 있다.
어떤 국민경제가 안고 있는 세 가지 주요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설명할 수 있다. 첫째로는 그 사회의 경제적 자원을 적절한 용도로 배분하는 일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어떤 상품을 어느 방법으로 생산하며, 누구에게 배분할 것인가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일이다. 그 사회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가능한 한 가장 높은 경제적 후생을 달성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효율적인 자원배분이 첫 번째 과제가 되는 것이다.
두 번째 과제는 이렇게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를 사회의 구성원 사이에서 공평하게 나누는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다.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경제가 가장 바람직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생산된 상품들을 모두 한 사람에게 몰아준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없다. 사회의 모든 사람이 헐벗고 굶주리면서 오직 한 사람만이 모든 경제적 지원을 독차지하는 불공평성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평한 분배는 효율적인 자원배분에 못지않은 중요성을 갖는다.
세 번째 과제는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다. 시장 경제체제에서는 경기의 과열과 침체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그것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그 진폭을 가능한 한 줄일 필요가 있다. 경기의 순환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게 될 뿐 아니라, 잘못하다가는 국민경제의 기반이 붕괴할 위엄에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제의 안정과 순조로운 성장을 위한 여건을 조성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말할 수 있다.
머스그레이브는 혼합경제에서 정부가 맡아야 할 주요 경제기능을 국민경제의 이 세 가지 과제와 관련해 정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정부가 수행해야 하는 기능을 자원배분, 분배, 그리고 경제안정이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정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정부가 이 세 가지 주요 기능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지 하나씩 설명해 보기로 하자.
우선 자원배분 측면에서는 정부가 어떤 재화나 서비스를 직접 생산 일을 담당할 수 있다. 뒤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공공재의 성격을 갖는 재화나 서비스의 경우에는 시장에 의한 배분이 효율적이지 못해 정부가 이의 배분에 직접 관여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또한 외부성이라고 불리는 현상에 의해 야기된 자원배분의 비효율성을 제거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하는 경우도 있다. 앞으로 배울 재정학의 이론 중에는 자원배분 측면에서 정부가 수행하는 기능과 관련된 것들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것이다.
두 번째로는 분배 측면에서는 공평한 소득분배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런데 분배상태의 개선을 위해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였는지에 관해서는 사람들 사이에 견해차가 존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선 어떤 분배의 상태가 공평한 것인지에 대해서조차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현대의 정부는 거의 예외 없이 분배 측면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경제안정 측면에서는 생산자원의 완전한 고용, 물가의 안정, 그리고 국제수지의 균형을 달성하기 위해 여러 가지 재정 동원하게 된다. 종래에는 총수요를 적적한 수준으로 관리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이와 같은 정책을 사용해 왔으나, 근래에는 경제의 공급능력을 제고하는 데도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인식이 바뀌어 가고 있다. 그런데 경제안정을 위한 정부의 개입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어떤 경제학자들은 정부 개입이 의도한 효과를 내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경제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기까지 한다는 점을 들어 개입에 반대한다.
머스그레이브는 안정 기능이 단순히 경제를 안정시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성장을 촉진하는 기능까지 포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우리나라같이 빠른 성장을 추구하고 있는 곳에서는 이 기능이 더욱 중요할지 모른다. 선진국의 경우에는 경제가 이미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성장을 극대화하기보다는 급격한 경기 변동을 방지하는 데 더 큰 역점을 당연히 두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성장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사회라면 이를 최대한으로 실현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며, 따라서 정부의 기능 중에서도 성장을 촉진하는 기능이 더 큰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상의 여러 기능이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모순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예컨대 더욱 공평한 분배를 위한 정부의 프로그램이 단기적인 효율성의 저하를 가져와 자원배분의 측면에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이들은 적절하게 조회시켜 효과적인 정책 운영의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어떻게 하면 여러 기능 사이의 충돌을 피하고 조화로운 운영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일반적인 해답을 얻기는 힘들다. 문제의 본질상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적절한 해법을 찾아 나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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