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정부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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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학

4.정부의 미래

by 오스카 리 2022.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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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제와 사회의 변화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머지않은 장래에 정부의 역할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경제적, 사회적 변화 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세계화의 진전과 인터넷의 확산이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세계는 급속도로 통합되는 추세를 보여 왔으며, 인터넷의 확산 속도 역시 이에 못지않게 빨랐던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주변 여건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정부는 더 이상 기존의 틀 속에 안주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세계화의 진전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세계화의 진전과 인터넷의 확산은 결코 반길 만한 일이 아니다. 이에 따라 조세 징수의 어려움이 가중될 뿐 아니라, 활동 영역을 대폭 줄여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부문의 비중이 꾸준하게 증가해 왔지만, 앞으로는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조세 징수의 어려움이 점차 커지면서, 정부부문의 비중을 줄여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진전이 조세 징수의 어려움을 가중하는 주요 원인은 노동과 자본의 이동성이 급격하게 커진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노동과 자본의 이동성이 극도로 커진 단계에 이르면, 국격은 아무런 실질적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된다. 노동과 자본은 경제적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이 나라 저 나라로 이동해 갈 텐데, 이때 조세부담이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 중 하나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더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나라는 노동과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은 각 나라가 경쟁적으로 세율을 낮춰 자원의 이탈을 막으려고 노력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낼 것이다. 부유한 사람들의 해외 이민을 막기 위한 소득세율 인하 경쟁과 동시에, 기업이나 공장의 해외 이전을 막기 위한 법인세율 인하 경쟁이 벌어지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런 세율 인하 경쟁은 이미 상당한 정도로 일어나고 있지만, 세계화의 진전과 더불어 한층 더 치열해질 것이 분명하다. 어떤 사람은 이와 같은 세율 인하 경쟁이 세율 0%의 상황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뜻에서 '바닥으로의 경쟁'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다국적기업들은 이런 경쟁적인 세율 인하의 환경에서 세금을 절약할 좋은 기회를 얻게 된다. 사무실과 공장들을 세율이 낮은 곳으로 이전시킴으로써 세금을 절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전가격을 활용해 세금을 절약할 수도 있다. 이전가격이란 다국적기업 내부의 한 영업 부문에서 다른 영업 부문으로 상품이 이전될 때 적용되는 가격이다. 다국적기업은 이전가격을 적절하게 조절함으로써 세금 부담을 줄일 수 있는데, 이에 대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된 실정이다.


인터넷의 확산

세계화의 진전과 더불어 인터넷의 확산도 조세 징수를 한층 더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최근 인터넷을 통한 상거래는 급격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가까운 장래에 전통적인 상거래보다 그 비중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인터넷을 통한 상거래는 과세 대상으로 여러 측면에서 까다로운 성격을 갖고 있다다시 말해 이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기술적인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뜻인데, 이런 예상의 구체적인 근거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우선 들 수 있는 점은, 인터넷을 통한 상거래의 경우 종래의 소매상 같은 과세상의 협력자를 찾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전통적인 상거래의 경우에는 소매상이 과세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는 것은 물론, 조세 징수 업무까지 대행해 주고 있다. 이들은 소비자로부터 부가가치세나 개별소비세를 받아 보세 당국에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한 상거래의 경우에는 중간단계에 있는 기업에 대해 이런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들은 오히려 최소한의 세금 부담으로 상품을 소비자에게 인도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할 가능성이 크다.

인터넷을 통한 상거래의 경우에는 중간단계 상인들의 존재 그 자체가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인터넷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인데, 이렇게 되면 과세당국의 어려움은 한층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기업과 기업이 인터넷상에서 직접 거래하는 소위 B2B의 경우, 거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조차도 어렵게 된다. 결국 기업들의 자진신고에 의존해야 하는데, 제삼자의 자료에 의해 검증될 수 없기 때문에 성실한 신고를 기대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익명성이 보장되는 전자화폐(e-money)의 보급, 암호화(encryption)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거래 당사자들 사이의 비밀스러운 거래는 훨씬 더 용이해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특히 인터넷을 통한 상거래가 국경을 넘어 행해질 경우 문제는 한층 더 복잡해진다. 예를 들어 한국 소비자가 미국 기업으로부터 상품을 구입했다고 할 때, 어느 나라 정부가 이 거래에 대한 과세의 권리를 갖는지조차 불분명해진다. 그 거래가 어떤 물리적 공간에서 이루어졌는지를 판정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설사 어느 나라 정부가 과세의 권리를 갖는다는 점에 합의를 본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징수되는 세금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제3국을 경유하는 방법 등을 통해 납세의무를 쉽게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인터넷을 통한 상거래의 대상이 되는 상품 중에는 '가상상품'(virtual goods)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도 조세 징수의 어려움을 가중하는 또 하나의 원인이 된다. 음악이나 영화가 CD나 DVD 같은 종래의 매체를 통하지 않고 컴퓨터 정보의 형태로 거래되는 것이 가상상품의 대표적인 예다. 인터넷의 확산과 더불어 이런 유형의 거래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개인과 기업들이 소유하는 컴퓨터상에서 정보가 왕래하는 것을 파악해 과세 대상으로 삼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정부의 활동 영역 축소

이렇게 조세 징수가 점차 어려워짐에 따라 각 나라 정부는 심각한 재정 압박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조세수입의 급격한 감소가 정부의 활동 영역 축소를 불가피하게 만든다면, 가장 우선적인 감축 대상은 소득재분배정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규모가 축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요 공격 대상이 바로 이 소득재분배정책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보기에 소득재분배정책은 정부의 비대화를 가져오는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그뿐만 아니라 소득재분배정책은 노동과 자본의 해외 이동을 촉발하는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도 먼저 축소해야 할 대상이 될 수 있다. 부유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소득재분배정책 시행을 위한 무거운 조세부담이 결코 달가울 리 없다. 강력한 소득재분배정책은 그 자체가 이들이 노동과 자본을 해외로 이동시키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해외로 빠져나가려는 노동과 자본은 국내에 붙잡아 두기 위해 경쟁적으로 세율을 낮추는 상황에서 소득재분배정책을 대폭 축소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겨질 가능성이 크다.

재정 압박을 느낀 정부가 공공서비스의 공급량을 줄여가다 보면, 어느 단계에서는 공공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정당한 요구조차 수용하기 힘든 상태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상황으로 보아 가까운 장래에 그런 단계에 이를 것 같지는 않다. 아직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정부부문의 규모가 너무 작은 것이 아니라 너무 큰 것이 문제 되고 있다. 그러나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 지금까지 설명한 바와 같은 방향으로 변화하리라는 것은 거의 분명한 일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정부의 역할과 위상이 지금과 많이 달라지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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