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부문의 자원배분에 관한 결정 중 조세상의 고려 없이 내려지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행위 그 자체를 합리적으로 수행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것보다 조세부담을 줄이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더 큰 이득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는 경향까지 있을 정도다. 그 결과 조세는 사람들의 노동 공급, 저축, 투자, 위험부담 행위 등 광범한 영역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심지어 조세가 사람들이 결혼하고 이혼하는 시점의 선택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세는 앞에서 본 것과 같은 실물적 의사결정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금융적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세금 우대 저축상품의 예에서 볼 수 있듯, 개인이 어떤 수단을 이용해 저축할 것인지 결정할 때 조세에 대한 고려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기업의 경우에는 어떤 방식으로 투자자금을 조달하고, 이윤 중 얼마를 배당금으로 지급할 것인지 등의 재무 관리적 결정에 조세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볼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새로운 조세가 부과되기도 전에 앞으로 그것이 부과될 계획이 있다는 발표만으로 자원배분에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머지않은 장래에 어떤 특정한 자산의 수익에 중과세하겠다고 발표하면 벌써 그때부터 그 자산의 수요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렇게 앞으로 어떤 조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낸다는 뜻에서 이를 공표효과라고 부른다.
조세가 민간부문의 경제행위에 영향을 주는 것을 가리켜 "교란을 일으킨다."라고 말할 때가 많다. 이 교란이란 말에는 어떤 부정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민간부문이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때 효율적 자원배분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조세가 민간부문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고 그 결과 경제행위에 변화가 생기면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뜻에서 조세가 민간부문의 경제행위에 교란을 일으킨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렇지만 조세의 존재가 언제나 효율성을 저하하는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바로 뒤에 보게 되겠지만, 조세가 민간부문의 경제행위에 아무런 교란을 가져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비효율성을 일으키기 때문에 조세를 통해 교정해야 할 필요가 있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조세가 민간부문의 여러 경제행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많은 지면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책의 뒷부분에서 두 개의 독립된 장을 통해 이 문제에 관해 자세한 설명을 하려고 한다.
중립세
민간부문의 경제행위에 전혀 교란을 일으키지 않는 조세가 예외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데, 이런 성격을 갖는 조세를 중립세 라고 부른다. 어떤 조세가 중립 세의 성격을 갖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제행위를 어떻게 바꾸더라도 조세부담에 아무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는 특성과 직결되고 있다. 조세가 부과될 때 사람들이 경제 행위를 바꾸는 것은 조세부담을 줄이려는 의도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도 조세부담을 줄일 수 없다는 것을 알면 사람들은 구태여 종전의 행위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조세가 중립세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내린 의사결정과 무관하게 조세부담이 결정되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소득세의 경우에는 납세자가 얼마나 많은 노동을 공급할 것인지 결정하는 데 따라 조세부담의 크기가 달라진다. 그러므로 소득세의 부과는 필연적으로 납세자의 노동 공급 결정에 교란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물품세도 사람들이 조세부담을 줄이기 위해 그것이 부과된 상품을 더 적게 사는 반응을 유발하게 된다. 따라서 소득세나 물품세는 중립 세가 될 수 없는데, 현실에서 보는 거의 모든 조세가 이들과 다를 바 없다.
현실에서 완벽한 중립세의 성격을 갖는 조세의 예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도 이것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인두세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 역시 완벽한 의미에서의 중립세라고 할 수 없다. 어떤 한 시점에서 보면 경제행위를 변화시킴으로써 인두세의 부담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에 중립세의 성격을 갖게 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인두세의 부과가 자식의 수를 선택하는 데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고, 그렇다면 인두세도 완벽한 중립세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민간부문의 경제행위에 교란을 일으키는 조세는 자원배분의 비효율성을 유발하게 된다. 그렇다면 조세가 유발하는 비효율성의 정도는 어떻게 잴 수 있을까? 비효율성의 정도는 개념적으로 중립세와 비교함으로써 측정할 수 있는데, 현실의 어떤 조세를 중립세로 대체할 때 사회 후생 수준에 생기는 변화로 이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조세가 비효율성을 유발하고 있다면 중립세로 대체할 때 후생 수준이 올라갈 것이고, 그 비효율성의 정도가 클수록 후생 증진의 폭이 더 크게 된다.
교정과세
조세가 민간부문의 경제행위에 영향을 주는 것이 모두 부정적인 효과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조세가 시장의 실패를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고 그 경우에는 민간부문의 경제행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영향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성격을 갖는 과세의 개념을 교정 과세라고 부르는데, 시장의 실패를 교정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에서 이렇게 부르고 있다. 교정 과세의 대표적인 예로는 환경세, 즉 오염물질 배출을 적정수준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 조세를 들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국민이 에너지를 절약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부과되는 에너지세도 교정과세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조세를 통해 국민의 에너지 소비 절약을 유도한다는 접근법은 기본적으로 소비자주권의 원칙과 상충할 소지를 안고 있다. 소비자주권의 원칙에 따르면, 에너지 소비를 절약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소비자들이 알아서 절약하게 된다. 따라서 정부가 소비자들의 선택에 구태여 관여할 필요가 없다. 사실 교저ㅗㅇ과세를 표방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소비자주권의 원칙과 상충할 위험성을 안고 있으며, 심지어 환경세의 경우에도 이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의 교정 과세는 사람들의 행동을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목적에서 부과되는 모든 세금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중에서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술이나 담배같이 건강에 해로운 것에 부과되는 죄악세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을 스스로 적게 소비하기로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렇게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행태경제이론의 연구에 따르면 자제력에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죄악세라는 것은 이렇게 자제력에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합리적인 결정을 하도록 도와준다는 견지에서 부과되는 것이며, 이 점에서 본다면 온정적 간섭주의에 기초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오도너휴-래빈은 건강에 좋지 않은 소비재에 대해 죄악세를 부과함으로써 사회 후생이 증가할 수 있음을 보였다. 그들에 따르면, 자제력이 부족한 사람이 술이나 담배를 과다하게 소비하는 것은 미래의 자신에게 부정적인 외부효과를 만들어내는 결과를 븢는다고 한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그것의 소비가 미래의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인식하고 절제할 테지만, 자제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그 사실에 대한 인식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죄악세는 이와 같은 부정적 외부효과를 교정하기 위한 피구세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 그들의 해석이다.
개인적 자유를 중시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온정적 간섭주의의 성격을 갖는 교정 과세는 불필요하고 부당한 간섭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소비자의 합리성에 대한 신뢰의 정도가 교정 과세의 아이디어에 대한 지지 여부를 결정하는 관건이 된다. 사람들이 근시안적인 태도 때문에 때때로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고 믿는 경우에만 교정 과세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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