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규제도 규제의 일정인 만큼 이에 따라 여러 가지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환경규제가 경제성장을 둔화시킬 수도 있고, 국내 기업들의 국제경쟁력을 약화하는 부작용을 가져오기도 한다. 애당초 환경정책에 별로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그와 같은 부작용을 가능한 한 부풀려 말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의 말을 들어 보면 환경정책이 경제의 효율성에 매우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 같은 인상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환경정책이 정말로 경제성장을 둔화시키고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약화하는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아직 명백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환경 정책과 경제 성장
만약 환경규제가 경제성장을 둔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런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무엇보다 우선 기업이 사용하는 투입 요소의 일부가 오염물질 정화에 사용되어야 하므로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생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기업의 생산성을 측정할 때 오염물질 정화로 인한 환경의 질 개선 효과까지 포함하는 것도 일리가 있는 방법이다. 이런 방식으로 생산성을 측정한다면 환경규제가 오히려 생산성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통계 수치상에 나타난 성장률은 전통적 의미에서의 생산성만을 반영하기 때문에, 환경 규제는 성장을 둔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둘째로 환경규제 때문에 기업의 생산공정이나 경영방식에 변화가 올 텐데, 이에 따라 생산성이 떨어지는 결과가 빚어질 수 있다. 기업이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생산공정이나 경영방식을 선택할 때 생산성이 극대화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기업이 외부적 요인 때문에 이를 바꿔야 하는 상황에서는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보면 환경규제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셋째로 환경규제는 기업의 투자에 영향을 줌으로써 생산성 저하를 가져올 수도 있다. 기업들은 환경규제를 준수하기 위해 환경 관련 투자를 늘려야 한다. 투자에 쓸 수 있는 자금이 주어진 상황에서, 환경 관련 투자의 증가는 다른 유형의 투자를 구축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다시 말해 기업의 생산능력과 직접적 관련을 갖는 투자가 줄어든다는 뜻인데, 이와 같은 투자 구성의 변화는 기업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환경규제는 이와 다른 이유로 기업의 투자 의욕에 나쁜 영향을 주기도 한다. 현실에서 시행되는 대부분의 환경규제는 기존 생산시설을 통제 대상에서 제외하고 새로운 생산시설에 대해서만 엄격한 통제를 가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은 환경규제의 특성을 '신규 원천편의'라고 부르는데, 이는 좀 더 새롭고 효율적인 생산시설에 투자하려는 의욕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실증분석의 결과로 환경정책이 경제성장을 둔화시킨다는 주장에 어느 정도 근거가 있음을 밝혀 주고 있다. 환경규제가 생산성에 악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미국 제조업의 경우 총요소생산성 감소의 8~16% 정도를 환경규제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 여기서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환경규제의 구체적 방식에 따라 생산성에 대한 영향이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시장유인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실시하는 경우에는 생산성에 미치는 악영향이 상대적으로 더 작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연구 결과는 역설적으로 환경규제가 생산성 정체의 주요 원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고 할 수 있다. 미국 경제는 1980년대 생산성 정체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는데, 일부 경제학자들은 지나친 환경 규제를 그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환경규제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부분이 생산성 감소의 고작 10% 내외에 불과하다면, 그것이 생산성 정체의 주요 원인은 아니었다는 말이 된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처럼, 환경규제가 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쳐 경제성장을 둔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환경 규제가 오히려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아직은 비록 소수에 그치고 있지만, 환경규제가 기업들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고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포터가 그 좋은 예인데, 그와 같은 주장의 근거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포터는 환경규제가 기업의 생산성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상은 생산기술이나 소비자의 욕구 등이 일정한 상태로 주어져 있는 정적인 세계를 전제로 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모든 기업이 이미 비용을 극소화하는 생산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정적인 세계에서 환경규제가 도입되었다고 하자. 기업들은 환경규제에 순응하기 위해 더 큰 비용이 드는 생산방식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생산성의 저하가 불가피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기술혁신이 지속해서 이루어지는 동적인 세계에서는 환경규제가 반드시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포터의 주장에 따르면, 적절하게 골격이 짜인 환경규제는 기술혁신을 촉진해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고 한다. 기술혁신에 의해 비용 절감 효과가 규제를 준수하기 위해 지출해야 하는 추가적 비용부담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수질오염 방지 기술의 경우 독일 기업들이 비교우위를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나라의 수질 관련 규제가 엄격하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규제를 준수하기 위해 기술혁신에 노력한 결과 우월한 기술력을 갖출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미국 기업들이 위험폐기물 관련 기술에 비교우위를 가진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포터는 환경규제가 환경 관련 서비스업의 성장을 촉진하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환경규제의 대상이 되는 기업이 이에 순응하기 위해 이 방면의 전문적 기업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다. 바로 이 과정에서 환경 관련 서비스업은 비약적 발전의 계기를 맞게 된다. 일자리와 소득 창출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볼 때, 환경 관련 서비스업의 성장은 다른 산업의 성장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이 점에서 보면 환경규제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그런데 환경규제가 모든 기업에 똑같이 적용된다 해도 이로부터 받는 영향은 기업마다 다르게 마련이다. 적응 능력이 나쁘고 비효율적인 기업일수록 이로 인한 부담이 더 클 텐데, 이에 따라 비효율적인 기업은 자연적으로 도태되는 결과가 빚어진다. 다시 말해 환경규제가 비효율적인 기업을 시장에서 몰아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인데, 이를 통해서도 경제 전반의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포터의 주장이다.
환경규제가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포터가설에 대한 엄밀한 검증은 아직 이루어진 바 없다. 하나의 주장이라는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것은 사실이며, 또한 경제학계에서 널리 공감을 얻고 있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아직도 그의 주장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환경규제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음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나름대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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