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현실의 비용 편익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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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학

19. 현실의 비용 편익 분석

by 오스카 리 2022.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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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질니스키는 일기예보에 비유해 우리가 비용편익분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용한 정보를 주지만 때때로 잘못된 정보를 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비용편익분석은 일기예보와 닮았다는 것이다. 또한 틀린 일기예보가 손해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처럼, 잘못된 비용편익분석도 손해를 가져다준다는 데서도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나아가 광범한 지역에 대한 장기 예보가 별 신빙성을 갖지 못하는 것처럼, 영향의 범위가 넓고 기간이 긴 공공사업에 대해 행해진 비용편익분석도 신빙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비용과 편익을 어느 가격에 의해 평가하느냐에 따라 쉽게 분석 결과가 뒤집힐 수 있음을 지적했다. 다시 말해 한 가격에 의해 평가했을 때는 경제적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드러난 공공사업이 다른 가격으로 평가하면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번복되는 일이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어느 가격에 의해 비용과 편익을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상황을 보아가며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그 선택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확신을 갖기 힘들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적 할인율을 어떤 수준으로 잡느냐에 따라 분석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이런 문제 말고도, 비용편익분석을 하는 과정에서 직면하게 되는 어려움은 한둘이 아니다. 이를 보면 객관적 타당성을 갖는 비용편익분석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 수 있다. 비용과 편익의 화폐가치가 구체적으로 도출되어 나오기 떄문에, 겉으로만 보면 비용편익분석이 매우 과학적인 평가방식이라는 인상을 받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과학적이라고 하기에는 객관성이 너무나도 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비용편익분석의 기법은 과학이 아니라 일종의 예술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비용편익분석을 정직하게 수행한다 해도 객관적으로 타당한 비용편익분석의 결과를 얻기 힘들다. 더군다나 현실에서는 의도적인 왜곡평가를 하려는 유인이 강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공공사업의 주체가 되는 정부의 부서가 그 사업의 비용편익분석에 깊숙이 관여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다. 앞에서 본 바 있는 관료제의 모형에서도 밝혀졌듯, 관료들은 우선 사업을 벌이고 보자는 태도를 갖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편익을 부풀려 사업이 경제적 타당성을 갖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려고 한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 큰 문제가 되었던 '새만금 간척사업'의 경제성을 평가하는 과정에서도 온갖 방법을 동원해 편익을 부풀렸던 것을 볼 수 있다. '새만금 사업 환경영향 공동 조사 결과보고서'를 보면, 마치 왜곡평가의 교과서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왜곡 평가의 갖가지 방법이 등장한다. 간척사업에서 기대할 수 있는 핵심적 편익은 이를 통해 조성된 토지의 가치다. 당시에는 간척사업으로 조성된 토지를 농업용으로 사용할 것을 전제로 사업이 계획되었기 때문에, 새로 조성된 농업용 토지의 가치를 편익의 거의 전부를 차지할 것이 뻔했다.

그런데 새만금 사업의 비용편익분석에서는 농업용 토지의 가치를 일단 편익에 포함한 다음, 그 토지에서 생산될 것으로 예상되는 농산물의 가치를 다시 포함해 이중 계산을 하는 방식으로 편익을 부풀렸다. 어떤 농업용 토지의 가치는 미래의 그곳에서 생산될 농산물의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토지의 가치와 미래에 생산될 농산물의 가치를 모두 편익에 포함하면 명백한 이중 계산을 하는 결과가 빚어진다. 이런 기초적인 사실을 몰랐을 리 없는데, 사업을 실행에 옮기고 싶은 욕심에서 의도적인 왜곡 평가를 한 것으로 짐작된다.

문제가 여기에서 그쳤던 것이 아니다. 미래에 생산될 쌀의 가치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부당한 편익 부풀리기를 시도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쌀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국내 가격을 써야 하는지 아니면 국제가격을 써야 하는지는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말해 쌀처럼 국제적으로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지는 상품이라면 국제가격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더 큰 타당성을 갖는다. 새만금 사업의 비용편익분석에서와 같이 국내 가격을 기준으로 평가하게 되면 편익이 두 배 이상 부풀려지는 효과가 발생한다.

새만금 사업의 비용편익분석을 담당한 사람들은 이에서 그치지 않고 '안보미가'라는 희한한 개념까지 동원해 편익 부풀리기에 나섰다. 식량안보의 관점에서 쌀의 가치를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쌀의 가치는 국내 가격보다도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게 된다. 그들은 조건부 평가법을 사용해 국내 가격 두 배 정도 수준의 안보미가를 계산해 냈다. 쌀처럼 시장에서 그 가치가 명백하게 드러나는 상품에 조건부 평가법을 사용한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조건부 평가법을 적용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시행해 안보미가를 끌어올린 흔적까지 발견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새만금 사업은 잘못된 비용편익분석에 의해 추진된 공공사업의 대표적 사례였다. 더욱 납득하기 힘든 점은 정부가 바뀌면서 사업의 목표 그 자체가 갑자기 바뀌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애당초 새만금 사업의 목표는 간척사업을 통해 농업용 토지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2008년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토지의 주 용도를 산업용과 관광용으로 바꿔 버렸다. 그렇다면 농업용 토지 조성이라는 전제하에서 수행된 비용편익분석 그 자체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뜻이다. 잘못된 비용편익 분석으로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새만금 사업은 간척공사가 시작된 지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환경파괴 문제와 더불어 개발 편익의 싫편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엄청난 물의를 빚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던 '한반도대운하사업'의 경우에서도 잘못된 비용편익분석의 또 다른 사례를 볼 수 있다. 이 사업을 추진하는 측에서는 사업에서 예상되는 편익이 비용의 2.3배나 된다고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만약 이 분석 결과가 사실이라면 당장 대운하를 파기 시작했어야 마땅한 일이었다. 그 정도로 경제적 타당성이 높은 공공사업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테니 말이다. 그러나 비용편익분석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편익을 최대한 부풀리고 비용은 최소한으로 줄여 그런 결과를 도출했음이 바로 드러난다.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그 사업이 환경에 미칠 악영향이 비용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강과 낙동강을 대규모로 준설하고, 이 두 강을 잇기 위한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대규모의 환경 파괴는 필연적으로 발생하게끔 되어 있다. 더군다나 주변의 생태계에 미칠 악영향까지 평가해 비용으로 계산한다면 천문학적인 규모로까지 커질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이런 환경 관련 비용을 완벽하게 무시하고 비용편익분석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믿기 힘든 결과가 도출된 것이다. 만약 그들이 제시한 비용편익분석 결과에 기초해 사업이 정말로 실천에 옮겨졌다면 엄청난 불행이 빚어졌을지도 모른다. 이를 보면 잘못된 비용편익분석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비용편익분석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불완전하게나마 비용편익분석을 해놓으면 최소한 공공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논의할 토대는 마련된 셈이다. 비용편익분석조차 하지 않고 정부가 어떤 사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면 잘못된 판단에 이를 가능성이 한층 더 크다. 비용편익분석조차 하지 않고 공공사업을 벌인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 사례가 있다. 그나마 작은 규모의 공공사업도 아니고 '단군 이래 최대'라는 수식어가 붙은 22조원짜리 대규모 공공사업과 관련해 이런 일이 일어났다.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이명박 정부에서 강행되었던 소위 '4대강 정비사업'이라고 부르는 초대형 공공사업이다. 불과 몇 달 만의 부실한 준비 끝에 첫 삽을 뜬 이 사업은 비용편익분석을 통한 예비타당성 평가 없이 바로 착공에 들어간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정부는 이 사업을 통해 수질을 정화하고, 홍수를 예방하며, 물 부족 사태에 대비하는 편익을 얻을 수 있음만을 밝혔을 뿐, 그것들이 구체적으로 얼마만큼의 가치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말도 없이 바로 공사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온 비용편익분석의 이론에 따르면 이것들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어렵기는 하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4대강 정비사업이 비용편익분석 없이 바로 착공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국가재정법이 요구하고 있는 예비타당성 조사 의무를 면제받았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공공사업의 남발을 막기 위해 5백억원 이상의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되는 공공사업은 반드시 비용편익분석을 포함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도록 규정되고 있다. 그러나 4대강 정비사업은 그것이 재해 예방사업의 성격을 갖는다는 근거 없는 구실로 예비타당성 조사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22조원이나 들어가는 초대형 공공사업이 비용편익분석조차 거치지 않고 바로 착공에 들어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비용은 22조원 이상 들 것임을 아는데 편익이 얼마인지를 몰랐기 때문에 이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 사업에 대한 찬반 의견은 각자의 믿음에 기초해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잘못된 비용편익분석이나마 해놓은 것이 있어야 그것으로부터 객관적인 논의가 가능할 텐데, 그것마저 없기 때문에 믿음의 충돌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 사업을 둘러싼 극심한 사회적 강등과 사업 후 드러난 환경과 생태계의 대량 파괴는 예고된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제대로 된 비용편익분석을 거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밀어붙인 초대형 사업이 그런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일일지 모른다. 앞으로 말한 것처럼 잘못된 비용편익분석이 불행한 결과를 빚을 수 있다. 그러나 4대강 정비사업처럼 잘못된 비용편익분석조차 존재하지 않는 상태는 더욱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현실의 사례는 우리가 비용편익 분석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좋은 교훈을 제시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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