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정부 지출의 당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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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학

17. 정부 지출의 당위성

by 오스카 리 2022.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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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민간부문은 한정된 자원을 어느 쪽이 사용할지를 놓고 서로 경합하는 양상을 보인다. 정부가 조세라는 강제적 수단을 써 민간부문이 사용해야 할 자원을 거둬들여 대신 사용하려 한다면 나름대로 당위성이 있어야 한다. 만약 그 당위성이 인정될 수 없다면, 민간부문이 사용해도 좋을 자원을 구태여 정부가 사용해야 할 이유가 없다. 정부의 지출이 정당화될 수 있는 주요 근거로는 시장실패의 보완, 소득재분배, 그리고 가치재 공급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시장실패의 보완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 시장이 실패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정부는 이에 따라 비효율성을 줄이기 위해 개입을 시도하게 된다. 시장의 실패와 관련된 개입에 드는 정부지출은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정부가 국방서비스, 경찰 서비스, 도로 혹은 공원 등의 공공재를 생산 및 공급하기 위해 자원을 사용하는 데 대해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그 정당성을 흔쾌히 인정해 줄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정부의 지출 중 많은 부분이 공공재의 성격을 갖는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 및 공급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뿐 아니라 외부성이나 불확실성 등 다른 유형의 시장실패와 관련된 정부지출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앞에서 시장의 실패에 대해 논의하면서, 이것이 발생했다고 해서 정부 개입이 자동으로 정당화되지는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시장의 실패와 관련된 지출을 하나씩 구체적으로 따져 보면 정당화될 수 없는 부분도 적지 않게 존재할 것이 분명하다.



소득 재분배

현실의 소득분배 상태가 공평하다는 보장이 없으며, 따라서 정부는 더욱 공평한 분배를 실현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하고 있다. 정부가 소득재분배를 위해 개입하는 데 반대하는 입장을 갖고 있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 그렇지만 현실을 보면 대부분의 정부가 재분배를 위해 개입을 시도하고 있는데, 그 배후에는 이와 같은 개입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대중들의 광범한 지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재분배정책을 시행하는 데는 막대한 규모의 정부지출이 요구된다. 국민소득에서 정부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높아져 온 이유 중 하나로 바로 이 재분배 관련 지출의 지속적 증가 현상을 들 수 있다. 정부의 지출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주 거론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재분배 관련 지출이라는 사실을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결국 이와 같은 지출에 대해 부여되는 당위성의 강도는 시대의 조류가 바뀜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가치재 공급

가치재의 성격을 갖는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 및 공급한다는 점에서 정부지출의 정당성을 찾아볼 수도 있다. 개인이 스스로 후생에 대해 내린 판단이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는 경우, 정부는 이를 시정하기 위해 개입을 시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몹시 가난한 가정에서 소득을 식품 구입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의 음주나 도박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고 하자. 정부는 이 가정이 술에 대한 지출을 줄이고 식품에 대한 지출을 늘리도록 유도할 수 있다.

정부가 생각하기에 술의 소비를 줄이고 식품의 소비를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해도, 어떤 가정의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개입해 소비패턴을 바꿀 수는 없다. 정부는 식품을 직접 공급해 주는 방식을 통해 식품 소비를 촉진하게 되는데, 이것이 가치재 공급의 좋은 예가 된다. 정부가 의무교육 제도를 통해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만드는 것도 비슷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그 밖에도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라든가 주택서비스, 혹은 문화 체육시설 같은 것도 가치재의 또 다른 예가 될 수 있다.

소비자주권의 원칙은 개인이 스스로 판단으로 취한 행동에 대해 정부나 그 밖의 제삼자가 간섭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가치재라는 개념이 이 소비자주권의 원칙과 불가피하게 충돌할 수밖에 없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가치재는 정부의 온정적 간섭주의를 반영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가치재를 공급하기 위한 지출의 정당성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인다.

앞에서 든 예 중 문화 체육시설 같은 것은 이것이 가치재인 동시에 공공재의 성격도 갖기 때문에 정부가 공급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의무교육의 경우에도 공공재의 성격을 어느 정도 갖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한 재화나 서비스에 공공재와 가치재의 성격이 섞여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 두 개념을 혼동하는 사람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공공재와 가치재는 서로 판이한 개념이므로 이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의 예산제도 개혁

정부가 바뀌면 예산제도를 위시한 재정제도 전반에 변화가 오기 마련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경향이 심해 정책의 연속성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2008년 새 정부가 들어오면서 재정제도 전반에 걸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예산제도에 관해서만은 지난 정부가 만들어 놓은 기본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대표적 예가 '재정 운영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3대 재정 개혁 과제'인데, 정부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개혁의 기본방향이 계속 유지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제도가 완전히 정착되어 기대하는 효과를 발휘하려면 아직도 큰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첫 번째 개혁 과제는 중,장기적 관점의 국가재정운용계획 수립인데, 이는 기존의 예산편성 방식이 너무 단기적 관점에 치우쳐 있다는 데 대한 반성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예산과 정책이 유기적으로 연계되기 위해서는 예산편성 과정에 경제의 앞날에 대한 장기적 비전이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존의 단년도 위주 예산편성 방식 하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나아가 일반회계, 특별회계, 기금이 별도로 작성되는 기존의 예산제도가 투명성과 재원 배분의 효율성 측면에서 문제를 갖는다는 점도 국가재정운용계획 수립을 요구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국가재정 운영계획은 일반회계, 특별회계, 기금을  포괄하는 통합재정 기준으로 작성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은 성격은 재정 규모와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재원 배분과 재정수지 관리의 효율성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두 번째 개혁 과제인 예산의 총액배분 자율 편성 제도는 부처별로 지출 한도를 설정하고 구체적인 지출 내용은 각 부처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허용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삼고 있다. 이처럼 각 부처에 상당한 정도의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써 예산과 관련한 각 부처의 책임과 권한을 강화한다는 데 이 제도의 기본 취지가 있다. 나아가 일선 행정부서가 가진 전문성을 적극적인 활용함으로써 재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도 이 제도의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

세 가지 재정개혁 과제 중 가장 큰 실질적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이 총액배분 자율 편성 제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동안 재정 당국이 독점하고 있던 예산편성 상의 권한을 각 부처로 대폭 이양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실험이 될 수 있다. 종래의 예산편성 방식 하에서 각 부처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예산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었고, 재정 당국은 이에 대해 무조건적인 대폭 삭감으로 맞서는 과정에서 상당한 비효율성이 야기되고 있었다. 이 제도가 순조롭게 정착할 수 있다면 재정 운영의 효율성이 크게 높아지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 개혁과제인 성과관리 예산제도는 재정사업의 목표와 성과지표를 설정하고 그 지표에 의한 평가 결과를 재정 운영에 반영하는 제도를 뜻한다. 지금까지의 예산이 주로 투입 측면에 주안점을 두는 방식으로 관리되었던 데 비해, 성과관리 예산제도는 사업의 최종 성과를 중점 관리한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예컨대 거리 청소 사업의 경우, 과거에는 청소부 인건비, 청소 차량 구입비나 유지비가 예산대로 집행되었는지의 여부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성과관리 예산제도 하에서는 청소사업의 성과, 즉 실제로 거리 환경이 얼마나 깨끗해졌는지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 제도는 총액배분 자율 편성 제도 도입으로 인해 각 부처의 예산편성 자율권이 대폭 확대된 데 대한 보완책의 성격도 갖고 있다. 즉 예산집행의 성과를 엄밀하게 검증함으로써 각 부처가 책임감을 갖고 예산을 편성, 집행하도록 독려한다는 의도가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성과 중심의 재정 운영 방식은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노르웨이 등 여러 나라에서 이미 실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설명한 3대 개혁 과제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정착될 것인지는 앞으로 더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나아가 그것의 실천이 실제로 재정 운영의 효율성을 얼마나 큰 폭으로 향상하게 될지도 아직은 미지수로 남아 있다. 과거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국가재정운용계획 수립이나 성과관리 예산제도의 도입이 재정 운영 방식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총액배분 자율 편성 제도의 경우에는 예산편성 상의 권한 일부가 일선 부처로 이양되는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눈에 띄는 성과를 볼 수 있다. 몇 년 동안의 실험을 통해 이 제도의 구체적 성과가 서서히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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