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나라에서 국민연금의 운용 규모는 국내총생산의 30%를 넘어설 정도로 방대한 규모의 프로그램으로 성장했다. 그러므로 이에 따라 민간 부문의 여러 가지 경제활동이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제도로 인해 영향을 받는 여러 경제활동 중 특히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저축과 노동 공급 행위다. 이 절에서는 국민연금제도가 이 두 가지 경제행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해 보려고 한다.
저축행위에 미치는 영향
노후의 생계보장을 주목적으로 하는 국민연금제도는 정부에 의한 강제저축 프로그램이라는 기본성격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은 강제적인 저축 프로그램의 도입이 사람들의 저축행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많은 경제학자가 관심을 보여 왔다. 개념적으로 따져 보면, 국민연금제도의 도입은 다음과 같은 경로를 통해 저축행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첫째로 재산 대체효과를 들 수 있는데, 정부의 강제저축 프로그램 때문에 자발적인 저축의 필요성이 줄어드는 데서 나오는 효과를 뜻한다. 사람들이 강제저축에 의해 형성된 재산을 개인 재산의 대체물로 인식하고 자발적인 저축을 줄인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둘째로는 은퇴 효과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국민연금제도의 도입이 퇴직상태에 있는 기간의 연장을 가져온다는 사실과 관련을 갖고 있다. 이 제도의 도입은 사람들이 종전보다 더 빨리 은퇴하게 만드는 효과를 내게 되며, 이에 따라 은퇴상태에서 보내는 기간을 연장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렇게 은퇴상태에 있는 기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더 많은 저축이 필요하게 된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자발적인 저축이 증가하게 되는 것을 가리켜 은퇴 효과라고 부른다.
셋째로는 국민연금제도가 자식에게 재산을 상속해 주고 싶어 하는 욕구와 관련해 저축에 영향을 주는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는데, 이를 상속 효과라고 부른다. 국민연금제도의 도입은 현재 일하고 있는 세대로부터 은퇴상태에 있는 세대로 소득을 재분배하는 효과를 낸다. 이 제도의 도입이 자식들의 처분 가능 소득 감소를 가져온다고 예상하는 부모들은 이를 상쇄하기 위해 더 많은 재산을 상속해 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더 많은 재산을 상속해 주기 위해서는 저축을 늘려야 할 것이므로, 상속 효과는 저축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 보면 재산 대체효과만 저축을 줄이는 방향으로 영향을 주고, 다른 두 가지는 모두 저축을 부추기는 효과를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효과의 절대적 크기로만 보면 재산 대체효과가 다른 효과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더 클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국민연금제도가 저축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궁극적으로 실증연구에 의해서 밝혀져야 할 문제 일 수밖에 없다.
펠드스타인은 미국의 경우 사회보장제도의 도입이 저축을 현저하게 줄이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실증연구 결과를 발표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1971년을 기준으로 할 때, 사회보장제도의 도입은 개인저축을 거의 반으로 줄어들게 했으며 이에 따라 경제 전체의 총저축을 38%나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그러나 펠드스타인이 자료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과연 그 분석 결과가 믿을 만한 것인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사회보장제도의 도입이 저축을 어느 정도 감소시킬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그렇지만 펠드스타인이 말하고 있는 정도의 현저한 저축감소가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댄지거 등은 대부분의 실증연구에서 사회보장제도의 도입에 따른 저축 감소 폭이 대략 0~20%의 범위 안에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오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펠드스타인은 1996년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사회보장제도가 개인저축을 거의 60%나 줄이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함으로써 오히려 종전보다 한층 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이 문제에 관한 논란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 공급에 미치는 영향
다른 모든 정부 프로그램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국민연금제도가 노동 공급에 대해 미치는 영향을 소득효과와 대체효과의 틀 안에서 분석할 수 있다. 이 제도 도입의 결과 사람들은 일할 때 더 큰 조세부담을 지는 대신 은퇴 후에는 연금의 혜택을 받게 된다. 현실의 국민연금제도는 일할 때 낸 세금보다 더 큰 연금의 혜택을 주는 것이 보통이므로, 이 제도의 도입은 사람들의 순자산 혹은 실질 소득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와 같은 실질소득의 증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 여가를 소비하게 만드는 효과를 낸다. 이 소득효과는 구체적으로 조기 은퇴의 결정으로 나타나거나 일하는 사람들이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국민연금제도에서 나오는 대체 효과의 경우에는 그 방향을 분명히 알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대체효과는 제도의 도입으로 인해 여가의 기회비용에 어떤 변화가 오는지와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 한 시간을 더 일할 때 얻을 수 있는 순소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와 관련을 갖는다는 뜻이다. 이 제도의 도입은 그가 추가로 일한 부분에서 얻는 소득에 대해 조세부담이 새로이 생긴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여가의 기회비용이 떨어진다는 것을 뜻하며, 이것만을 고려한다면 대체효과는 노동 공급량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낸 세금은 은퇴 후에 받는 연금으로 돌아오는데, 사람들이 이 점까지 고려해 의사결정을 한다면 대체효과는 다른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한 시간을 더 일해 얻은 추가적 소득에서 낸 세금은 나중에 더 큰 연금의 혜택으로 이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제도의 도입이 여가의 기회비용을 상승시킨 셈이 되는데, 이 경우 대체효과는 오히려 노동 공급량을 늘리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앞에서 본 소득효과가 비교적 명백하게 노동 공급량을 줄이는 역할을 하는 데 비해, 대체효과는 그 방향이나 크기를 분명히 알기 힘든 것이다. 결국 국민연금제도가 노동 공급에 미치는 영향도 실증 연구의 결과에 의해 그 진상을 알아볼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이 제도가 노년층의 조기 은퇴를 부추기고 있을지 모른다는 점에 대해 많은 실증연구가 행해진 바 있다. 미국 사회에서 1950년 이래 65세를 넘는 사람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25% 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있는데, 이 변화 중 사회보장제도의 영향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내는 데 실증연구의 초점이 맞춰졌다.
그런데 실증연구 결과를 보면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해석이 나와 있어 어느 한쪽으로 명백한 결론을 내기 힘든 상황이다. 더군다나 이 제도가 현재 일하고 있는 사람의 노동시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행해진 실증연구 그 자체가 매우 드문 형편이다. 이론연구뿐 아니라 실증연구도 국민연금제도가 노동 공급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명백한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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