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부담을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공평한지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접근법이 있다. 하나는 편익원칙으로, 각 납세자가 정부 서비스로부터 받은 혜택, 즉 편익에 의해 공평한 조세부담의 크기가 결정된다고 보는 접근법이다. 다른 하나는 능력원칙인데, 각 납세자가 가진 경제적 능력에 따라 부담을 지우는 것이 공평하다고 본다.
편익원칙
편익원칙은 한마디로 말해 각 납세자가 공공서비스로부터 받은 편익에 비례하도록 조세부담을 분배하는 것이 공평하다고 보는 접근법을 뜻한다. 이와 같은 접근법을 채택하면 지출구조의 특성이 공평한 조세제도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결과가 나타난다. 왜냐하면 지출구조의 특성에 따라 각자가 받는 편익의 분배양상이 달라지고, 이에 따라 공평한 조세부담의 분배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각 사람이 정부 서비스로부터 받는 편익이 조세부담 분배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빅셀이 제시한 자발적 교환의 재정이론에 그 연원이 있다. 우리가 물건을 살 때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편익에 상응하는 가격을 지불하듯, 공공부문에서 공급하는 재화나 서비스로부터 나오는 편익에 대한 대가로 조세를 납부해야 한다는 기본원칙이 바로 자발적 교환의 이론에서 도출되어 나올 수 있다.
각 사람에게 공공서비스로부터 받은 편익에 비례한 조세부담을 지우는 방법은 납세자의 자발적 협조를 끌어낼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자신이 정부 서비스로부터 받는 편익에 따라 조세부담이 결정되는 것이므로, 사람들은 자연히 납세의무를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편익원칙을 채택할 경우, 조세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신이 얻는 편익의 크기를 줄여서 표출하는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다시 말해 무임승차를 하려는 납세자들의 전략적 행위 때문에 편익원칙의 엄격한 적용이 어려워진다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 문제가 일어나지 않게 만들려면 납세자 자신이 보고한 편익의 크기에 의존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측정한 편익의 크기에 의해 각 사람의 부담을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정부가 제공하는 재화와 서비스에서 얼마나 큰 편익을 얻고 있는지 알아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납세자별로 편익을 파악할 수는 없다고 해도, 최소한 각 소득계층에 귀착되는 편익의 크기 정도는 알고 있어야 그 계층의 구체적 조세부담 수준을 결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금 가진 통계자료나 분석기법으로는 이것마저도 제대로 해내기 힘든 형편이다.
또한 이 접근법은 적절한 소득분배가 이루어져 있음을 전제해야 그 타당성이 인정될 수 있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이 접근법은 재분배 목표 추구를 위한 조세부담의 분배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소득분배가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채택할 경우 분배 측면에서의 개선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편익원칙이 당연히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명백한 경우가 하나 있다. 그것은 정부가 제공하는 재화나 서비스가 사용재의 성격, 즉 소비에서의 경합성을 명백하게 갖는 경우다. 이런 성격을 갖는 재화나 서비스라면 그것의 혜택을 받는 사람이 그 비용을 부담해야 마땅하다는 뜻에서 편익원칙의 적용이 정당화될 수 있다. 수도사용료나 지하철 요금 등이 그 좋은 예인데, 각 사람이 혜택을 받은 만큼 비용을 부담해야 공평하게 된다는 데 전혀 이견이 없을 것이다.
능력원칙
공공서비스의 혜택이 어떻게 분배되고 있는지와는 관계없이 납세자의 담세능력에 따라 부담이 분배되어야 공평하다고 보는 것이 바로 능력원칙 접근법이다. 능력원칙은 스미스의 국부론이나 밀의 정치경제학원리 같은 고전파 경제학자의 저작에서 이미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스미스는 한편으로 능력원칙을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편익원칙을 옹호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해 상당히 애매한 느낌을 준다. 반면에 밀은 역진적 성격을 갖는 편익원칙을 배격하고, 이보다는 능력원칙이 훨씬 더 공평한 조세부담의 분배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조세 부과의 기본원리를 내놓은 동등 희생의 원칙은 능력에 따른 조세부담 분배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이 접근법이 갖는 장점은 조세제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재분배 목표를 추구할 수 있게 된다는 데 있다. 반면에 이 접근법은 정부지출에 의한 혜택과 조세부담을 연결하지 않기 때문에 납세자들의 자발적 협조를 얻기 힘들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공평한 과세의 원칙으로 이 접근법이 갖는 호소력은 편익원칙보다 훨씬 더 크다고 평가할 수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원칙적으로는 능력원칙을 채택하고, 편익원칙은 사용재의 성격이 강한 재화나 서비스의 배분과 관련해 제한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경제적 능력에 따라 조세부담을 지게 해야 한다는 말은 조금 막연하다고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도 우선 경제적 능력과 조세부담의 크기를 연결하는 구체적인 부담분배의 원칙이 제시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 점에 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구체적 원칙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 수평적 공평성
똑같은 경제적 능력의 소유자는 똑같은 세금 부담을 져야 한다는 원칙이 바로 수평적 공평성의 원칙이다. 이 원칙을 한층 더 일반화시켜 표현하면, 모든 의미 있는 측면에서 똑같은 사람은 조세상으로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된다. 공평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기본원칙이 준수되어야 한다. 수평적 공평성의 원칙은 바로 이 기본원칙과 상응하는 원칙으로 매우 큰 직관적 호소력을 갖는다.
그러나 이 원칙을 실제로 적용하려고 할 때 어떤 사람들을 똑같은 능력의 소유자로 보아야 하는지의 문제가 생긴다. 현실에서는 어떤 두 사람도 모든 측면에서 똑같을 수 없으므로, 특정한 측면만을 보고 여기에 차이가 없으면 똑같은 경제적 위치에 있는 사람, 다시 말해 똑같은 경제적 능력을 갖추는 사람으로 보게 된다. 바로 그 특정한 측면에서의 차이만을 경제적 능력의 관점에서 볼 때 의미 있는 차이로 인정한다는 뜻인데, 문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 있는 차이로 볼 것인지에 있다.
예를 들어 인종이나 종교 등의 차이를 의미 있는 차이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거의 이견이 없다. 또한 장애자나 노약자인지의 여부를 의미 있는 차이로 보아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별 이견이 없다. 그러나 결혼 여부나 납세자가 얻고 있는 소득의 종류 등이 의미 있는 차이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다양한 배경과 특성을 가진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들을 똑같은 경제적 능력의 소유자로 보아 수평적 공평성의 적용 대상으로 삼아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2) 수직적 공평성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더 큰 경제적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만드는 것이 공평한 일이다. 그렇다면 소득이 커짐에 따라 조세부담을 얼마나 더 크게 만들지 결정해야 하는데, 이것과 관련된 원칙이 바로 수직적 공평성이다. 구체적으로 경제적 능력이 커감에 따라 얼마나 누진적으로 조세부담을 늘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즉 적절한 누진성의 정도에 대해서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뜻인데, 공평성이 결부된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문제는 그리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뒤에 적절한 누진세율 구조의 문제에 대해 논의하면서 이 수직적 공평성의 문제를 다시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한 가지 언급해 두어야 할 점은 수직적 공평성의 원칙과 앞에서 본 수평적 공평성의 원칙 사이에 불가분의 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조세제도가 수직적 공평성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을 때, 수평적 공평성이나마 충족되어야 차선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수직적 공평성이 결여된 상황에서 수평적 공평성의 원칙만을 충족한다는 것은 기껏해야 변덕스러운 차별대우를 방지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소득이 같은 사람들이 똑같은 세금을 낸다는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변덕스러운 차별대우를 의미하지 않음은 분명하지만, 이와 같은 조세부담의 분배가 결코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두 원칙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완전히 무작위적인 조세를 부과해도 변덕스러운 차별 정도는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조세가 지금 설명하고 있는 공평성의 원칙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어떤 납세자가 이유 없이 차별대우를 받는다거나 하는 일은 절대 생기지 않는다. 한 원칙만 충족되는 것보다는 오히려 두 원칙이 모두 충족되지 않는 쪽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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