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가 자원배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중세 영국에서 부과된 창문세의 예에서 생생히 드러나 있다. 1696년에 제정된 이 조세는 납세자가 소유하는 건물의 창문 수에 따라 내야 하는 세금의 크기를 결정했다. 당시에는 창문이 하나의 사치품 구실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유할수록 창문이 많은 집에 살고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그러나 이 조세는 사람들에게 창문의 수를 극도로 줄인 집들을 짓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조세가 자원배분에 미치는 영향은 효율성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이 절에서는 조세와 자원배분의 효율성 사이의 관계에 관심의 초점을 맞춰 보려고 한다.
조세가 경제행위에 미치는 영향
민간부문의 자원배분에 관한 결정 중 조세상의 고려 없이 내려지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행위 그 자체를 합리적으로 수행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것보다 조세부담을 줄이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더 큰 이득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는 경향까지 있을 정도다. 그 결과 조세는 사람들의 노동 공급, 저축, 투자, 위험부담 행위 등 광범한 영역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심지어 조세가 사람들이 결혼하고 이혼하는 시점의 선택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세는 앞에서 본 것과 같은 실물적 의사결정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금융적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세금 우대 저축상품의 예에서 볼 수 있듯, 개인이 어떤 수단을 이용해 저축할 것인지 결정할 때 조세에 대한 고려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기업의 경우에는 어떤 방식으로 투자자금을 조달하고, 이윤 중 얼마를 배당금으로 지급할 것인지 등의 재무 관리적 결정에 조세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볼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새로운 조세가 부과되기도 전에 앞에서 그것이 부과될 계획이 있다는 발표만으로 자원배분에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머지않은 장래에 어떤 특정한 자산의 수익에 중과세하겠다고 발표하면 벌써 그때부터 그 자산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렇게 앞으로 어떤 조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낸다는 뜻에서 이를 공표효과라고 부른다.
조세가 민간부문의 경제행위에 영향을 주는 것을 가리켜 "교란을 일으킨다."라고 말할 때가 많다. 이 교란이란 말에는 어떤 부정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민간부문이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때 효율적 자원배분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조세가 민간부문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고 그 결과 경제행위에 변화가 생기면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뜻에서 조세가 민간부문의 경제행위에 교란을 일으킨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렇지만 조세의 존재가 언제나 효율성을 저하하는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바로 뒤에 보게 되겠지만, 조세가 민간부문의 경제행위에 아무런 교란을 가져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비효율성을 일으키기 때문에 조세를 통해 교정해야 할 필요가 있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조세가 민간부문의 여러 경제행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많은 지면이 필요하다.
중립세
민간부문의 경제행위에 전혀 교란을 일으키지 않는 조세가 예외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데, 이런 성격을 갖는 조세를 중립세 라고 부른다. 어떤 조세가 중립 세의 성격을 갖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제행위를 어떻게 바꾸더라도 조세부담에 아무 변화도 생기지 않는다는 특성과 직결되고 있다. 조세가 부과될 때 사람들이 경제 행위를 바꾸는 것은 조세부담을 줄이려는 의도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도 조세부담을 줄일 수 없다는 것을 알면 사람들은 구태여 종전의 행위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조세가 중립 세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내린 의사결정과 무관하게 조세부담이 결정되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소득세의 경우에는 납세자가 얼마나 많은 노동을 공급할 것인지 결정하는 데 따라 조세부담의 크기가 달라진다. 그러므로 소득세의 부과는 필연적으로 납세자의 노동 공급 결정에 교란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물품세도 사람들이 조세부담을 줄이기 위해 그것이 부과된 상품을 더 적게 사는 반응을 유발하게 된다. 따라서 소득세나 물품세는 중립 세가 될 수 없는데, 현실에서 보는 거의 모든 조세가 이들과 다를 바 없다.
현실에서 완벽한 중립 세의 성격을 갖는 조세의 예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도 이것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인두세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 역시 완벽한 의미에서의 중립 세라고 할 수 없다. 어떤 한 시점에서 보면 경제행위를 변화시킴으로써 인두세의 부담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에 중립 세의 성격을 갖게 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인두세의 부과가 자식의 수를 선택하는 데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고, 그렇다면 인두세도 완벽한 중립 세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민간부문의 경제행위에 어떤 변화도 가져와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엄격하게 중립 세를 정의하면 현실에서 이런 조세의 예를 전혀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약간 완화된 형태로 중립 세를 정의해, 경제행위에 영향을 주도라도 특정한 방식으로 주는 경우에는 교란이라고 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소득효과만 있고 대체효과는 없는 조세라면 이를 중립 세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대체효과에 의해 민간부문의 경제행위가 변화하는 것만을 교란이라고 볼 뿐, 소득효과에 의한 것은 교란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민간부문의 경제행위에 교란을 일으키는 조세는 자원배분의 비효율성을 유발하게 된다. 그렇다면 조세가 유발하는 비효율성의 정도는 어떻게 잴 수 있을까? 비효율성의 정도는 개념적으로 중립 세와 비교함으로써 측정할 수 있는데, 현실의 어떤 조세를 중립 세로 대체할 때 사회 후생 수준에 생기는 변화로 이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조세가 비효율성을 유발하고 있다면 중립 세로 대체할 때 후생 수준이 올라갈 것이고, 그 비효율성의 정도가 클수록 후생 증진의 폭이 더 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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