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탈세 행위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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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학

23. 탈세 행위의 문제

by 오스카 리 2022.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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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의 회피와 탈세

이 세상에 세금 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가능하기만 하다면 무슨 수를 쓰든 세금을 적게 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사람들이 세금을 더 적게 내기 위해 취하는 행동을 조세의 회피와 탈세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흔히 '절세'라는 말로 불리는 조세의 회피는 조세부담을 적게 하려고 자기 행동을 수정하는 것을 뜻하며, 이 과정에서 법을 어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직종에서 얻는 소득은 과세 대상이 되지만 다른 직종에서 얻는 소득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을 보고 직종을 바꾸는 행위가 그 좋은 예다.

이에 비해 탈세는 불법적으로 납세의무를 기피하려고 하는 행위를 뜻한다. 조세의 회피는 법률을 어기지 않고 합법적으로 조세부담을 줄이려는 행위를 뜻하는 데 비해, 탈세는 법률을 위반해 가면서 조세부담을 줄이려는 행위를 뜻한다는 점에서 명백한 차이를 갖는다. 그러나 현실에서 납세자들이 조세부담을 줄이기 위해 취하는 행동이 조세 회피 행위인지 탈세 행위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를 모두 동원해 합법적으로 조세부담을 줄인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교묘한 방법으로 법률을 피해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탈세가 이루어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을 골라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로 들 수 있는 것이 이중장부를 사용해 조세부담을 줄이는 방법이다. 실제 거래에 사용하는 장부는 따로 둔 채 조세 당국에 보고하는 장부를 별도로 만들어 이윤이 적게 난 것처럼 허위신고를 하는 방법이다. 우리 사회에서 탈세하려는 중소기업가들이나 상인들이 가장 흔히 쓰고 있는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둘째로 소득을 보고할 때 아예 일부를 탈루시켜 보고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영세사업자나 개인의 경우에는 기장의무가 면제되고 있으므로 자신이 알아서 소득금액을 신고하게 된다. 월급의 형태로 받는 근로소득처럼 뻔히 들여다보이는 경우는 어찌할 수 없지만 사업소득이라든가 부수입 같은 것은 허위로 신고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서비스산업이 기형적으로 비대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 부문에서 봉사료와 같은 형태로 발생하는 막대한 규모의 소득은 거의 신고되지 않고 있다.

셋째로 현금거래를 통해 조세 당국의 눈을 피하는 방법이 있다. 수표나 신용카드에 의한 거래는 추적이 가능한 데 비해 현금에 의한 거래는 거래당사자들만 알 뿐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아무리 엄격하게 실명제가 실시된다고 하더라도 당사자들끼리 현금으로 주고받는 경우에는 어찌할 방도가 없다. 마지막으로는 생산자끼리 생산한 물건을 현물로 주고받는 것을 통해 탈세하는 방법도 있는데, 이 경우도 현금에 의해 거래하는 경우처럼 추적이 극히 힘들다.

탈세가 문제 되는 이유가 단지 조세수입이 줄어든다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탈세가 광범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조세부담의 공평성에 대한 의문이 생기게 마련이고, 이런 의문은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려는 의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남들은 요리조리 피해 가며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는데 왜 나만 바보같이 세금을 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기 떄문이다. 따라서 모든 나라에서 탈세를 막는 것이 조세 행정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되고 있다.

탈세는 실제로 소득이 발생했는데도 조세 당국에 신고하지 않음으로써 가능해진다. 이렇게 조세 당국에 신고되지 않고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경제활동을 지하경제라고 부른다. 지하경제의 규모가 정확하게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지하경제의 본질상 그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통계 자료를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간접적인 방식으로 지하경제의 규모를 짐작해 보는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국셏청이 1979년부터 세무감사 자료에 기초해 탈루소득, 즉 원칙적으로 과세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신고하지 않은 소득의 크기를 주기적으로 파악해 오고 있다.

슬렘로드는 미국 연방세의 2001년도 탈루소득 규모를 소개하고 있는데, 총 3,450억 달러로 원칙적으로 과세 대상이 되어야 할 금액의 16.3%에 이른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조세 행정 체계를 자랑하는 미국에서도 상당한 정도로 탈세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세목별로 탈루소득의 크기를 따져보면, 대부분의 탈세가 소득세를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미국 경제 전체의 총탈루소득 중 71.0%나 되는 2,450억 달러가 소득세와 관련해 발생한 탈루소득이라는 뜻이다.

소득별로 과세 대상 소득에서 탈루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을 파악한 결과에서도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임금 소득의 경우에는 탈루소득의 비율이 1%에 지나지 않지만, 비농업 부문의 자영업 소득의 경우에는 그 비율이 무려 57%에 이른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임금 소득에 비해 자영업 소득의 탈세율이 유난히 높은 것은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위시한 많은 나라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특징이다. 다른 방법을 통해 영국 경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자영업 소득의 탈세율이 높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영국 경제를 대상으로 한 이 연구는 사람들이 세무 당국에 신고한 소득과 가계의 지출 패턴을 비교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소득별 탈세 규모를 추정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특히 식료품에 지출한 금액과 신고한 소득 사이의 비율에 관심의 초점을 맞췄는데, 자영업자의 경우에는 이 비율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수준이 비슷한 사람의 식품비 지출 비중은 대개 비슷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자영업자의 경우에 이 비율이 유달리 높게 나타났다는 것은 분모, 즉 신고한 소득이 비정상적으로 작았음을 뜻한다. 신고한 소득이 작다는 것은 탈루소득이 그만큼 큰 것을 의미하는데, 분석 결과를 보면 약 1/3가량이 탈루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자의 지갑은 '유리 지갑'이라는 말이 있듯, 원천과세가 되는 근로자의 경우에는 탈세가 지극히 어렵다. 반면에 자영업자의 경우에는 소득을 감추기가 상대적으로 더 쉬운 측면이 있다. 비록 엄밀한 분석이 이루어진 바는 없으나, 우리나라에서도 탈세가 상당히 광범하게 이루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변호사나 의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까지도 탈세를 하는 것으로 드러나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다. 자영업자나 전문직 종사자 중에는 비교적 고소득층이 많은데, 고소득층의 탈세가 특히 더 심하다는 사실은 조세제도의 공평성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탈세가 성행하고 있는 것은 모든 국민이 당연히 조세 납부의 의무를 져야 한다는 인식이 잡혀 있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사회지도층 인사들까지 탈세를 할 정도로 우리 사회의 도덕 불감증이 심각한 수준에 와 있는 상황이다. 박명호 등이 우리나라 국민의 납세 의식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즉 고소득층으로 갈수록 납세 의식이 더 낮아질 뿐 아니라, 학력이 높아질수록 납세 의식이 더 낮아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연구 결과를 보면 공평한 조세부담의 분배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조세 행정을 담당하는 부서의 무책임한 태도도 탈세의 보편화에 커다란 역할을 해 왔다. 미움을 산 개인과 기업을 집중적으로 감사하거나 탈세를 적발하고서도 적당히 넘어가는 등의 무책임한 태도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 원인이 되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공평무사한 자세로 일관된 노력을 기울여 왔다면 지금처럼 온 사회에 탈세가 만연된 상황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 들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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