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적자가 국민경제에 여러 방면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은 분명하나, 그 영향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경제학자들의 견해가 항상 일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재정적자가 경제의 총수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견해차가 크게 엇갈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견해의 차이가 경제를 안정시키는 수단으로서의 재정정책이 갖는 유효성에 대한 견해의 차이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재정적자가 경제의 장기적 성장이나 국제수지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는 의견이 비교적 통일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총수요에 미치는 영향
예를 들어 정부가 현재의 지출 수준을 그대로 유지한 채 국민으로부터 거둬들이는 세금을 100억원만큼 경감시켜 주기로 결정했다고 하자. 이렇게 지출 수준에 변화가 없이 조세부담을 경감시켜 주기 위해서는 그 금액에 해당하는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관심을 가진 것은 이와 같은 변화가 경제 전체의 총수요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의 문제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학파마다 다른 답을 제시하고 있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사실 경제학에서는 이처럼 학파마다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 그다지 드물지 않은데, 이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를 정리,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전통적인 케인스 경제학자들은 국채 발행을 통해 조세부담을 경감시켜 줄 때 총수요가 더 커지는 결과가 나온다고 말한다. 세금을 예전보다 더 적게 내면 처분가능소득이 그만큼 늘어나 소비수준을 높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에 통화주의자들은 국채 발행이 구축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총수요에는 변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국제가 시중에 풀려나가는 과정에서 정부가 가용자금을 놓고 민간부문과 경합하는 양상이 빚어지며, 그 결과 이자율이 상승하게 된다고 한다. 이자율이 상승하면 기업의 투자가 줄어들고, 이에 따라 조세 경감을 통한 소비 촉진 효과가 상쇄되는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국채 발행이 얼마간의 구축효과를 가져온다는 데는 대부분의 경제학자가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 효과가 현실에서 어느 정도로 강하게 나타날지는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학파에 따라 이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큰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케인스 경제학자들은 이 효과가 그다지 심각할 것으로 보지 않지만, 통화주의자들은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른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구축효과가 어느 정도의 크기로 나타날 것인지는 재정적자가 발생하는 시점에 경제가 어떤 상황에 부닥쳐 있느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황에서 재정적자가 발생할 경우에는 구축효과가 매우 큰 폭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에 경제가 매우 침체하여 있는 상황에서 재정적자가 발생하는 경우라면 구축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케인스 경제학자들은 경우에 따라 재정적자가 오히려 투자를 촉진하는 결과까지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경제가 매우 침체하여 있을 때 재정적자를 통해 경제에 자극을 주면 국민소득 수준이 올라가기 시작하고, 이에 따라 투자도 따라서 상승하는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배로는 리카도의 대등 정리를 들어 또 다른 각도에서 적자재정이 총수요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주장을 편다. 이 정리에 따르면 경제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은 오직 정부의 지출 수준과 그 내용일 뿐이며, 그것을 조달하는 방법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한다. 다시 말해 정부지출이 일정한 수준으로 결정되어 있다면, 그것이 조세로 조달되든 아니면 국채를 통해 조달되든 아무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즉 국채-조세의 구성 비율은 자원배분의 측면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재정을 적자로 운영했다고 해서 총수요가 촉진되는 효과는 전혀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리카도의 대등 정리는 국채와 관련된 여러 문제에 걸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그 요지를 간략하게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엄밀하게 말해 국채는 기본적으로 미래의 조세부담을 뜻하며, 그 부담의 현재가치는 국채의 가치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합리적인 경제주체는 국채와 미래의 조세부담 사이에 존재하는 이 대등 관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조세로 거둬들이던 부분을 국채로 대체한다 해도 그의 경제적 선택을 변경해야 할 하등의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렇기 떄문에 국채의 발행은 민간부문의 경제활동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는 논리가 바로 대등 정리의 핵심이다.
구축효과의 논리는 재정적자로 인한 확장 효과가 민간부문의 투자 감소에 의해 상쇄되기 때문에 총수요가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 리카도의 대등 정리는 적자재정이 총수요를 변화시킬 수 없을 뿐 아니라, 전반적인 자원배분 과정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 내용으로 삼고 있다. 만약 리카도의 대등 정리가 성립한다면 국채의 발행이 이자율을 상승시키는 결과는 나타나지 않고, 따라서 구축효과도 전혀 나타나지 않게 된다. 재정적자가 총수요를 증가시키지 못한다는 결론이 비슷해도, 그 결론에 이르는 논리는 매우 다르다는 점에 유의하기를 바란다.
적자재정으로 인한 국채의 발행이 총수요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는 궁극적으로 실증연구에 의해 판가름이 나야 할 문제다. 지금까지 제시된 실증연구의 결과 중에서 구축효과가 완벽하게 작용한다거나 리카도의 대등 정리가 엄밀하게 성립하고 있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입증해 주는 것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케인스 경제학자들의 견해가 옳은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 이 시점에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적자재정의 효과에 대해 그와 같은 여러 가지 이론적 가능성이 제기되어 있다는 사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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