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국채의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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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학

31. 국채의 부담

by 오스카 리 2022.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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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와 관련된 논의에서 항상 열띤 논쟁의 초점이 되는 것은, 이에 따라 미래의 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결과가 생기는지의 여부다. 국채가 일단 발행되면 정부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조세수입 아니면 또다시 국채를 발행해 마련한 자금으로 이 채무를 상환해야 한다. 조세수입을 통해 채무를 상환하는 경우 미래세대의 납세자들이 그 부담을 지게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다시 국채를 발행해 상환하는 경우에도 새로이 발행된 국채의 보유자에게 계속 이자를 지급해야 하므로 미래세대의 부담이 늘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논리는 상황을 너무나 단순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갖는다. 국채 발행의 결과 그 나라 경제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에 따라 상환 부담의 주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채 발행의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서로 달라, 국채로 인한 부담을 누가 지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견해가 엇갈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통적 견해

러너로 대표되는 전통적 견해에서는 국채와 관련된 부담을 내부채무와 외부채무로 구분해 논의하고 있다. 내부채무란 정부가 그 나라 국민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형식을 취할 때 생기는 채무를 뜻하며, 외부채무는 정부지출을 위해 해외에서 빌려다 씀으로써 생기는 채무를 뜻한다. 러너는 내부채무의 경우 이에 따라 미래 세대의 부담이 늘어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국채가 그 나라 국민에 의해 구입되어 국내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경우, 상환을 받는 사람 역시 그 나라의 국민이 되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국채는 증여나 상속, 혹은 매매의 과정을 거쳐 주인을 바꾸게 될 것이지만, 결국 그 나라 안에 사는 미래세대의 어떤 사람이 소유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환을 위해 조세부담을 하는 것이 미래의 국민인 동시에, 상환을 받는 사람 역시 미래의 국민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현재의 세대가 국채를 통해 적자재정을 운영했다 하여 미래세대의 전반적 소비수준이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국채의 발행은 미래 세대 내부에서 소득의 이전을 가져올 뿐, 세대 전체에 추가적인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논리다.

그러나 외부채무인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 정부가 해외에서 빌려 온 돈으로 지출을 늘린 결과 현재세대의 소비가 증가할 수 있었다고 하자. 미래세대는 이 채무를 갚기 위해 조세를 납부해야 하고 그들의 소비수준은 그만큼 떨어지게 된다. 이와 같은 점에서 본다면 국채의 발행은 전적으로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귀착된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외부채무의 경우라면 현재세대가 적자재정을 통해 소비수준을 높이는 것과 관련된 부담을 미래세대가 전적으로 지게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렇지만 해외에서 빌려 온 돈을 정부가 투자하는 데 사용했다고 하면 이 결론은 바뀌어야 한다. 정부가 해외로부터 빌려 온 돈을 투자행위에 사용하는 경우에는 미래세대가 이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을 얻게 되기 때문에 그들의 실질적 부담이 그만큼 가벼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정부가 수행한 투자계획에서 나오는 수익률이 해외에서 차입할 때 지불해야 할 이자율보다 높다면 미래세대는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의 소비를 누릴 수도 있다.

이상에서 설명한 전통적 견해는 정부가 자기 국민에게 국채를 팔아 적자재정을 운영하는 한 미래세대에게 부담이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주장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상황을 너무 단순하게 파악한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상황을 다른 각도에서 고찰해 보면 미래세대가 국채의 부담을 지게 된다는 주장에 상당한 설득력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리카도의 대등 정리

리카도의 대등 정리가 현실에서 성립한다면 국채 발행이 미래 세대에 부담을 안겨 주는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 이 대등 정리를 믿는 사람들은 전통적 견해와는 전혀 다른 근거에서 미래세대가 국채의 부담을 전혀 지지 않게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배로는 사람들이 유산상속과 관련된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리카도의 대등 정리가 성립하는 근거를 찾을 수 있으며, 이것이 사실로 입증된다면 국채는 미래세대에게 아무런 부담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배로에 따르면, 합리적인 사람들은 국채 발행이 미래세대의 조세부담을 높여 소비수준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올 것을 예측하고 이를 상쇄하기 위해 더 많은 유산을 남겨 주는 선택을 한다. 즉 자기 후손이 미래에 져야 할 추가적 조세부담에 해당하는 만큼 유선을 더 늘려 물려줌으로써 정부가 국채를 발행한 효과를 상쇄시킨다는 말이다. 미래세대는 더 많은 유산을 받아 조세부담에 충당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실질적 조세부담은 종전과 다를 바 없다. 나아가 리카도의 대등 정리가 성립하면 국채 발행이 국민저축과 투자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고, 따라서 자본축적에도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장기적인 성장의 측면에서 본 미래세대의 부담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리카도의 대등 정리가 분명한 논리적 근거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 세계에서 그 정리가 예측하는 바와 똑같은 결과가 나오리라고 믿기는 힘들다. 사람들이 재정적자로 인한 후손들의 추가적 조세부담을 정확하게 예상하고 유산을 바로 이 크기로 늘려 주는 일이 정말로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을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정도의 합리성을 갖는 사람을 우리 주위에서 찾기는 무척 힘들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후손에게 거의 아무런 유산도 남겨 주지 않는 현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유산의 크기를 조정해 국채 발행의 효과를 상쇄하는 행위는 애당초 유산을 상속해 주려고 결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채의 발행에 의해 후손의 조세부담이 무거워지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 해당하는 만큼 유산을 물려주기로 마음을 바꿀 가능성이 희박한 것이다.

리카도의 대등 정리가 현실에서 성립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재정적자의 폭이 커질 때 민간부문의 저축이 따라서 증가했다는 사실을 보여야만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로 재정적자와 민간부문 저축의 감소가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은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은 사실에 미루어 볼 때 리카도의 대등 정리를 들어 국채가 미래의 세대에 아무런 부담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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