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떤 규모의 지출을 원하고 있을 때 이를 전부 조세수입에 의해 충당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중 일부를 국채 발행에 의해 충당해도 좋은지의 선택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재정을 건실하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세입의 범위 안에서 지출을 유지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답을 내놓을 수도 있겠으나, 문제가 이처럼 단순하지만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재정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적극적인 지출정책을 쓸 필요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지출의 성격상 조세수입에 의존하는 것보다 국채 발행에 의해 재원을 조달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선택의 문제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로 하자.
(1) 지출 프로그램의 수혜자
원칙적으로 말하면 정부의 지출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혜택을 받는 사람이 그것에 필요한 재원을 제공해야 마땅하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소비의 성격이 강한 정부지출은 조세수입에 의해 충당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지만 투자의 성격을 갖는 정부지출의 경우에는 그 혜택이 미래의 세대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조세수입보다는 국채 발행에 의해 조달되는 것이 더욱더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지출 중 소비의 성격을 갖는 것과 투자의 성격을 갖는 것을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2) 세대 간 공평성의 측면
일반적으로 기술 진보와 생산성의 증대로 인해 미래세대에 속하는 사람들은 현재세대보다 한층 더 풍요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다. 그렇다면 세대 간 공평성의 관점에서 볼 때 미래세대로부터 현재세대로 소득을 이전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 한 사회의 부유한 사람으로부터 가난한 사람에게 소득을 이전해 주는 것이 공평성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것처럼, 부유한 세대로부터 가난한 세대로 소득을 이전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방향으로 소득을 재분배한다는 의미에서 국채에 의해 재원을 조달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3) 효율성의 측면
조세수입에 의해 재원을 조달하는 것이 더 나은지 아니면 국채를 발행해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더 나은지의 여부는, 어느 쪽이 더 작은 초과부담을 만들어내게 될 것인지의 관점에서도 평가할 수 있다. 이 책의 앞부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현실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조세는 그 징수과정에서 초과부담을 일으키게 된다. 그런데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는 방법으로 재원을 조달한다고 해서 초과부담을 회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채를 발행하기로 한 것은 실질적인 의미에서 지금 세금을 거두는 대신 미래에 세금을 걷기로 결정한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어떤 재원 조달의 방식을 쓰든 간에 조세 징수의 시점만이 다를 뿐 현재가치의 측면에서는 동일한 조세부담을 가져온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두 가지 방법 사이에 하나의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그것은 조세수입에 의한 재원 조달의 경우 지출 전체에 해당하는 세금을 한꺼번에 부과하는 것을 뜻하지만, 국채 발행에 의존할 경우에는 여러 번으로 쪼개서 조금씩 세금을 걷는 것을 뜻한다는 차이다. 예를 들어 만기가 다른 여러 종류의 국채를 발행해 지출의 요구를 충족시킨다면 각 채권의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조금씩 세금을 거두어 갚아도 된다. 결국 문제는 어느 쪽의 초과부담이 더 작을 것이냐에 달려 있는데, 초과부담의 크기가 세율의 제곱에 비례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여러 번에 나누어 징수하는 쪽의 초과부담이 더 작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국채에 의해 재원을 조달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효율성의 측면에서 본 평가가 반드시 국채에 의한 재원 조달 쪽에 유리하게 나오는 것은 아니다. 효율성의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국채에 의한 재원 조달이 나름대로 문제점을 안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자본축적에 나쁜 영향을 미쳐 장기적 효율성의 저하를 가져오게 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국채 발행에 수반되는 이와 같은 부정적 측면을 감안하면 효율성의 관점에서 어떤 재원 조달 방식이 더 바람직한지 판단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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