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설명에서 알 수 있듯, 재정적자와 국채는 현재 생존하고 있는 세대가 미래세대에 재정적 부담을 떠넘기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데 세대 사이의 부담분배 문제를 따진다는 관점에서 볼 때 재정적자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재정수지에 무엇이 포함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일정한 기준이 없고, 따라서 포함 대상이 달라짐에 따라 재정수지의 상황이 큰 폭으로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재정 적자의 크기만을 보고 서로 다른 세대 사이의 부담이 어떻게 분배되는지 파악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들은 세대 사이의 부담분배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대안으로 세대 간 회계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세대 간 회계 모형은 각 세대가 현재와 미래를 통틀어 정부에 지불해야 할 금액의 현재가치가 얼마인지를 측정하는데 관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한다면 각 세대가 납부하는 모든 종류의 세금에서 정부로부터 받는 이전지출을 뺀 순 납부액의 현재가치가 얼마인지를 알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세대별로 부담해야 할 금액을 알아낸 다음 이들을 서로 비교하면 미래세대로 부담이 떠넘겨지느냐의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세대 간 회계 모형에서 말하는 '세대'라는 것은 똑같은 나이를 갖는 사람들을 뜻한다. 예를 들어 1975년에 태어나 2015년 현재 40세가 된 사람들이 한 세대를 구성하게 된다. 그리고 2020년에 태어날 사람들을 통틀어 미래세대라고 부른다. 세대 간 회계 모형의 관점에서 볼 때, 문제의 핵심은 현재 생존하고 있는 세대와 미래세대 사이에서 부담이 어떤 비율로 분배되고 있는지에 있다.
세대 간 회계 모형은 정부가 행하는 모든 종류의 지출을 충당하기 위한 조세부담을 언제든 누구인가가 져야 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무한대로 긴 기간 동안 존재한다고 가정할 때, 이 기간 전체를 통해 다음과 같은 예산제약이 만족하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우선 현재 생존하고 있는 세대가 져야 할 조세부담의 현재가치를 P로 나타내는 한편, 아직 태어나지 않는 미래세대가 져야 할 조세부담의 현재가치를 F로 나타내기로 하자. 현재 시점에서 파악한 정부의 순재산을 W라고 하면,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은 이 셋을 모두 합친 것과 같다. 정부의 소비지출 흐름의 현재가치를 G라고 할 때, 정부의 예산제약을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P + F + W = G
W와 G가 일정한 값으로 주어졌다고 할 때, P의 값이 하나의 수준으로 결정되면 이에 따라 F의 수준이 결정된다. 따라서 어떤 이유에서든 현재 생존하고 있는 세대의 부담(P)이 줄어들면 미래세대의 부담(F)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현재 생존하고 있는 세대에게 이전지출을 늘려 주거나 이들로부터 거둬들이는 세금을 줄여 주면, 이는 결국 미래세대의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 모형을 이용해 만약 현재의 재정 관련 정책의 기본 틀이 그대로 유지될 경우 그 부담이 각 세대로 어떻게 분배될 것인지 알아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거기에 어떤 변화가 올 경우 그것이 세대 간의 부담 분배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예측할 수 있다. 아우어 박-전은 이 모형을 적용해 우리 사회에서의 세대 간 회계를 계산해 본 바 있는데,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재의 재정 관련 정책이 그대로 유지될 경우 우리의 미래세대는 매우 무거운 부담을 안게 된다고 한다.
그들은 이처럼 미래세대에게 무거운 부담이 돌아가게 되는 주요한 이유를 국민연금제도와 건강보험제도에서 찾고 있다. 앞에서 지적한 바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제도는 '저부담, 고급여'의 기본구조를 갖고 있어 언젠가는 연금 재정에 심각한 위기가 올 것으로 예상한다. 이렇게 현재 생존해 있는 세대에게만 유리한 구조를 만들다 보니 미래세대의 부담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대와 세대 사이의 공평성 차원에서 볼 때 국민연금의 부담과 급여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정하는 일은 매우 시급한 과제라고 말할 수 있다.
국민연금제도뿐 아니라 공무원연금이나 군인연금 같은 공적 연금제도 역시 이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사회보험의 또 다른 기본 축인 건강보험제도의 경우에도 정부의 선심성 정책이 미래세대의 부담을 무겁게 만드는 결과를 낳고 있다. 그런데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매우 지지부진한 상태에 머물고 있다. 정치적 인기만을 위해 현재 생존해 있는 세대의 부담을 현실적인 수준으로 높이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세대에 부담을 떠넘긴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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