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가 경제행위에 미치는 여러 가지 영향 가운데 가장 많이 논의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노동의 공급에 미치는 영향이다. 조세가 노동 공급과 관련한 의사결정 과정에 교란을 일으켜 발생하는 초과부담의 크기는 정책의 측면에서 매우 큰 중요성을 갖는다. 또한 누진적인 소득세나 사회복지제도의 도입이 사람들의 근로의욕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관심사가 될 수 있다. 조세가 사람들의 근로의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면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조세가 노동 공급에 미치는 영향은 이론적 모형을 통해 분석할 수도 있고 실증자료를 이용해 분석할 수도 있다. 이론모형에 입각한 접근법은 효용 극대화를 추구하는 개인의 선택에 기초해 조세의 도입이 이 선택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한다. 그러나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이 접근법은 나름대로 문제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이로부터 도출될 수 있는 결론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하다. 우리는 결국 실증분석에 의해 미진한 부분을 보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기초적 논의
구체적인 분석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지금 관심을 가진 문제와 관련된 몇 가지 기본적 사항에 대해 논의를 통해 분석의 기반을 다질 필요가 있다.
(1) 분석단위 선택의 문제
조세가 노동 공급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고 할 때, 개인과 가계 중 어느 쪽을 분석의 기본단위로 선택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원론적인 답은 개인을 기본적 분석단위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 공급의 문제에서뿐 아니라, 저축이나 위험부담 행위 등 소비자 선택과 관련된 문제의 경우에는 언제나 개인이 기본적 분석단위가 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노동 공급에 관한 결정이 내려지는 과정을 보면 개인보다 가계를 분석의 기본단위로 선택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어떤 개인이 얼마만큼의 일을 할 것인지 결정할 때 이것이 궁극적으로 그 자신의 선택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결정의 배후에는 한 가족 안의 경제적 여건이 강한 영향을 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주부가 얼마나 많은 시간의 노동을 공급할 것인지 결정할 때, 남편이 얼마나 많은 소득을 얻고 있느냐가 중요한 고려사항이 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돈 잘 버는 남편을 둔 주부가 웬만한 이유 없이는 백화점의 주부 사원이 되기로 결심하지 않을 것이 뻔하다.
이렇게 보면 한 개인의 노동 공급에 관한 결정이 사실상 가족의 공동 의사결정이라는 성격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그와 같은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가족의 전반적 여건에 따라 각 구성원이 얼마나 일할 것인지가 결정된다는 뜻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세가 노동의 공급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할 때 가계를 기본적 분석단위로 선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
(2) 노동 공급량의 결정요인
한 경제 전체의 노동 공급량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의사결정의 결과라는 것을 알아 두어야 한다. 하나는 노동시장에 참여할 것인가의 여부에 관한 결정이며, 또 하나는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평균적인 노동시간에 관한 결정이다. 첫 번째 결정, 즉 노동시장 참여 여부에 관한 결정은 사회적, 문화적 배경과 산업화의 정도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미국이나 일본처럼 산업화가 고도로 진전되어 여성의 노동력을 활용해야 할 필요가 큰 곳에서는 여성의 참여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을 것이 분명하다.
소비자가 어떤 물건을 살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할 때, 기준이 되는 유보가격이 있어 가격이 그 이하여야만 사려는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노동 공급의 경우도 이와 비슷해, 사람마다 나름대로 유보임금률을 갖고 있어 실제의 임금률이 이 이상이어야만 노동시장에 참여한다고 볼 수 있다. 조세는 세금을 내고 난 후의 순 임금률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노동시장 참여와 관련된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임금률이 간신히 유보임금률의 수준을 넘는 사람의 경우, 세후 순 임금률이 유보임금률 이하로 떨어져 노동시장에 참여하기를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누진적 소득세제도가 가정 안의 부차적 노동 공급자, 예를 들어 주부의 노동시장 참여율을 낮추는 효과를 내는 경우도 있다. 누진적인 세율구조하에서 부부의 소득을 합산해 한꺼번에 세금을 부과하는 경우에는 주부가 번 소득에 대해 매우 높은 한계세율이 적용되는 결과가 나타난다. 어떤 주부들은 이런 상황에서 구태여 노동시장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될 것이므로, 주부들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떨어지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한 경제 전체의 노동 공급량을 결정하는 두 번째 요인, 즉 평균적인 노동시간에 관한 결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표적 개인의 효용극대화선택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조세가 노동 공급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이론적 모형은 주로 이 선택과정을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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